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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담

2000년전 베스비오화산 폭팔로 화산재에 덮힌 비운의 고대도시 폼페이 입구-1 본문

추억여행

2000년전 베스비오화산 폭팔로 화산재에 덮힌 비운의 고대도시 폼페이 입구-1

복담이 2021. 2. 20. 23:52

       이탈리아 북부부터

       밀라노,베니스(베네치아),

       중부 피렌체를 관광하고

       남부까지 3시간 이상

       소요한듯 했습니다

       2017년 3월29일 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나와

       일반 고속도로를 바꿔가는 듯 합니다

 

     휴게소에 내려 잠간~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길죽하게 키가 크는 사이프러스나무와

     우산소나무가 특이해 보였습니다

 

     지루한 시간 에는

     버스 뒷좌석에서 사진놀이~

 

 

 

 

 

  역시 오고 가는 자동차들이 많습니다

 

 

 

   폼베이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버스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3월 29일 이었는데요

꽃들이 만개한 듯 보였습니다

남부지방은 다릅니다

 

  폼베이 풍경이 차창 너머로 보였습니다

 

 

 동생들과 일행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담 너머로 처음보는 풍경에 신기해서 사진을...

 

 

 소나무가 크고 오래 되어 보이더군요

 

 

 

 

 

 

 

    2.000년 전의 모습이라니

    믿기지 않아 그저

    셀카봉으로 사진을 담고 또 담아봅니다

 

 

 

 

 

 

   외국인들과 우리 일행들은

   매표소에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경사진 담길을 올라서는데

     강한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습니다

 

 

  이천년의 돌로 된 도로 믿겨지지 않습니다

  화산재에 덮힌 도로를 발굴한 그대로 랍니다

  사진에 올려봅니다

 

 

 

 

     이곳은 부유한 사람이 살던 집이라 철문이 보였습니다

 

 

 

 

   이곳은 포럼 광장이랍니다

   발굴은 1748년 나폴리 왕의 지시로 발굴 시작

   이곳 폼페이 광장과 공중목욕탕과 돌기둥이 복원되었습니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고 체계적으로 발굴을 통해

   폼페이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답니다

 

뒤로 보이는 산이 베스비오산 입니다

 

 

베스비오산 줌인

 

베수비오 화산은 폭팔 후 2분만에 6m 높이로 폼페이를 덮었고

부와 풍요를 누리던 도시는 자연 앞에 힘없이 사라졌답니다

 

1.안내책자 사진입니다

 

2.발굴된 폼페이 전경입니다

 

 

폼페이 Pompei 는 나폴리 남쪽에 휴양도시로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땅 밑에 묻혔다가

18세기에 나폴리왕 카를로스 3세가 발굴을 시작했다.

 

 

 

폼페이 역사를 이해 하시는데

도움이 될듯해서 올려봅니다



본디 폼페이는
로마보다 앞선 역사를 가졌다고 알려진 도시국가였다.

 

폼페이(Pompeii)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주 나폴리현 폼페이 코무네에 속하고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 떨어진

베수비오산(Monte Vesuvius 1281m) 근처에 있습니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에서 화산이 분출하면서

두께 4~7m의 화산재와 분석에 묻혀 파괴되었습니다

174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이 이뤄져

광장, 목욕탕, 수로와 마차도로,

원형극장, 약국, 주점 등의 유적지가 발견됐습니다.

현재 5분의 4 정도가 발굴되었습다.

2010년 11월 6일에 폭우로 ‘검투사의 집’이 붕괴돼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원래 항구를 낀 농업·상업의 중심지이자,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였고

지금은 내륙이 됐지만 당시엔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을 저장하고

비싸게 유통해 부를 축적한 유적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기후와 토질이 좋아 농업도 발전했습니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에서 묘사 되었듯이

1세기의 폼페이는 로마에 완전히 동화돼

번영을 누렸으며 향락과 방종의 소굴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에 대한 심판으로 폼페이에 화산이 터졌다는 것인데

이미 시민 다수가 알코올중독, 납중독(식기·술잔에 납 사용)으로

폼페이는 오래 가지 못할 한계에 다다랐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유적을 살펴보니 고기잡이로 만선한 선장이 공중목욕탕에서 피로를 풀고

미녀와 밤새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했을 시대상이 떠오릅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이탈리아어로 에르콜라노 Ercolano)도

폼페이와 함께 동시에 화산재에 파묻힌 유명한 고대 유적지이며

폼페이가 베수비오산에서 남쪽으로 수 ㎞ 떨어져 있다면

헤르쿨라네움은 베수비오산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나폴리와도 훨씬 가깝고 바다에서 멀지 않습니다.

발굴 전까지 화산쇄설암에 거의 진공상태로 유적이 보존됐기 때문에

목재는 물론 지붕, 침대, 창호, 음식 등이 유기질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해안가에선 300개의 해골도 발견 되었고

헤르쿨라네움은 고급 가옥이 밀집한 것으로 봐

폼페이보다 훨씬 부유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폼페이의 화산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2만명 추정) 중

2000~5000명이 즉사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인 63년 2월에도 대지진이 일어났지만

도시는 순탄하게 재건되었고

그러다 16년 뒤 화산 분출로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평평한 언덕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주위의 농경지와 와이너리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폼페이는 로마시대부터 와인 산지로 유명했습니다.

인구 2만의 도시에 와인바만 200개가 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폼페이 농경지는 화산쇄설암으로 구성된 약 30㎝ 두께의

토양으로 이뤄져 통기성이 뛰어나고 각종 무기질이 풍부하고

유기물도 토양 사이에 잘 스며들어 거름을 저장·소통하기에 좋습니다.

이런 테루아(토양)와 강렬한 햇빛 덕분에 폼페이는

이탈리아 북부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지역에 빠지지 않는 와인 산지가 됐습니다.

이탈리아 특유의 와인 품질을 자랑하기 때문에 전문 투어도 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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