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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담

중국 5대 명산중 제3 명산 태산 본문

추억여행

중국 5대 명산중 제3 명산 태산

복담이 2021. 3. 8. 10:10

중국 5대 명산중 제3 명산 태산

3 산동성 태산 (山東省 泰山)

세계복합유산 (世界復合遺産) 1987년 指定

태산은 중국의 대표적인 名山 1,545m 이다

 

예로부터 동악(東岳), 태악(泰岳),

대종(岱宗),대산(岱山)이라 불렀고

 

춘추시대(BC 722-BC 481)부터

태산이란 이름으로 정착했다

 

 

태산 탐방

【어구 풀이】
<태산(太山)> :

중국 산동성에 있는 명산. 중국에서는 오악 중의 으뜸인 동악이다.

예로부터 왕자가 천명을 받아 성을 바꾸면 천하를 바로잡은 다음,

반드시 그 사실을 태산 산신에게 아뢰기 때문에

이 산을 높이어 대종(岱宗)이라고도 일컫는다.

높이는 불과 1,545m이다.
<뫼이로다> : 산이로다.

 

 

 

중국의 산악신앙에서 비롯된 오악(五岳)

 

동쪽에 있어 동악으로도 불리는 태산(타이산),

서쪽에 있어 서악으로 불리는 화산,

남쪽의 남악 형산,

북악인 헝산(항산),

중부의 중악 숭산(쑹산).

 

 

 

그 중에서도 태산은 가장 신령한 으뜸산으로 불리는데,

진시황제, 전한 무제, 후한 광무제 등이

천하가 태평한 것을 하늘에 알리는

봉선의 의식을 거행한 곳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태산과 노산은 청도 근교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한시간 거리

아마도 다녀오신 분들이 많으시겠지요

양사언의 시를

태산이 높다하되....

읊조리며 걸으니

힘들어도 걸을만 했습니다

이런산이 우리나라 서쪽에 있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욕심도 가져보았습니다

 

 

 

 

   

 

우측에 보이는 천가 입구

 

 

하늘의 거리라는 뜻을 가진

'천가(天街)'를 멀리 바라봅니다

7000 여개의 돌계단이 아득하게 이어지는 태산.

사람들은 계단을 한발 한발 오를 때마다

자신의 소원을 읊으며 이뤄지기를 염원한답니다

 

이 문을 지나면 인간이 아닌 신선들이 산다는 하늘 거리로 통합니다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 역사를 간직한 낡은 건물들이 늘어선 천가.

 

 

 

 

 

 

 

태산 정상을 배경으로~!!

  흑백 사진으로 만들어 봅니다

 

  태산이 높다고 해서

  복담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더워서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렇게 강한 태양 빛에 얼굴이 익어갈 듯한 태산

높은만큼 햇빛도 뜨거워서 얼굴을 감싸야 했습니다

함께한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

 

 

자연석에 글과 상형문자가 표기되어 있어요

세세히 보니 태산의 지형을 표기한 듯 했어요

오랜 세월에 흐려져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내 나름대로 이렇게여 줄줄 읽었더니..ㅎㅎ

모르는 사람들 척하는줄 모르시고 그런 줄 알아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태양이 이렇게 따거울 정도로 강한 빛이란 걸 처음 느꼈어요

  뜨거운 태양을 피해 보려구 감싸고 ..가리고 ..

  태산이 높다 하더니 태양도 가까운지라

  온몸에 온도를 상승시켜주네요

  칠천여 계단을 걸으며

  모든 지인들께서 건강,행복하시기를 기원했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현대어 풀이】
태산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하늘 아래에 있는 산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들은 올라가 보지도 않고,

산만 높다고들 하더라.

 

【개관】
▶지은이 : 양사언(楊士彦)
▶갈래 : 평시조, 서정시, 단형시조
▶성격 : 교훈시(敎訓詩)
▶제재 : 태산
▶주제 : 이상(理想)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

 

양사언 [楊士彦, 1517~1584] 요약 조선 전기의 문인 ·서예가.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 때 금강산(金剛山) 만폭동(萬瀑洞) 바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

8자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시(詩)와 글씨에 모두 능했는데,

특히 초서(草書)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

한호: (韓濩한석봉과  )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명필 서예가로 불렀다.

 

본문 본관 청주(淸州)

자 응빙(應聘). 호 봉래(蓬萊) ·완구(完邱) ·창해(滄海) ·해객(海客).

1546년(명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현감(三登縣監) ·

평창군수(平昌郡守) ·강릉부사(江陵府使) ·함흥부사

철원군수 ·회양(淮陽)군수를 지내는 등 지방관을 자청하였다.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 때 금강산(金剛山)

안변(安邊)군수로 재임 중

지릉(智陵)의 화재사건에 책임을 지고 귀양갔다가,

2년 뒤 풀려나오는 길에 병사하였다.

시(詩)와 글씨에 모두 능하였는데,

특히 초서(草書)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렀다.

 

그의 시풍은 이별과 상사(相思)의 서정적인 시와

낭만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로서

16세기 문단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집에 《봉래시집(蓬萊詩集)》이 있다.

인터넷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