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담
나의 신앙 생활을 되돌아 보며 본문
평화를 빕니다
재속프란치스칸회원으로서 회칙,회헌의 영성 생활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서약하고 어느새 26년의 세월이 되었습니다
초기 양성기에는 본당 생활 열심히 하고 월례회,구역회에
빠지지 않으면 되리라는 생각으로 입회하고 양성 과정을 통해
엄격히 교육을 받으며 생활 했지만 때로는 버거울 때도 있었습니다
특히 주일에는 어느 중요한 약속이라도 회원의 일이 아니면
끊어야 했던 그 열정을 생각하면 월례회 참석에 큰 힘이 되었지
싶습니다,
제일 마음에 큰 힘과 희망을 준
생활양식서 귀절이 생각납니다
"회원들은 순종,가난,정결을 회칙(제10~12조)
자기의 처지에 맞게 사는 방법을 배워가며 어떠한 경우라도
자유와 기쁨의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한다"
한달에 한 번 정동 작은형제회에 나가서 월례회에 참석할 때면
삶이 곧 자유이고 기쁨이 되었음을 느끼며 회원으로서 뿌듯함을
채워 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구역 모임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모임이 되더랍니다
선배 회원님들이 뭐라고 하시지 않는데요
40대의 초 나이라 어려웠었지요
모임을 빠지려고 핑계를 할라치면 동생 한 복녀(로사)
구역모임이 기본인데 빠지면 안되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참석을 하고
활동 영역이 컸었던 자유분방한 생활에서
회원으로서 삶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삶을 살면서 무엇보다 좋은 말, 따뜻한 말,고운 말
실천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은 새털같이 가벼워 한 번 내 뱉으면 주워담기 힘들다"는
탈무드의 교훈처럼 내가 하는 말이 씨가 되어 어떻게 크게 자랄지
아무도 모릅니다
앞으로의 회원 생활 에서는
좋은 말, 고운 말, 기쁨의 얼굴로 먼저 손 잡아 주는 넉넉하고
풋풋한 마음으로 나 하나 뿐 아니라 내 주위에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을 실어줄 수 있는 회원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한 복순 (베로니카)
신발 사러 가는 날 길에 보이는 건 모두 신발 뿐이다.
길가는 모든 사람들의 신발만 눈에 들어온다.
사람 전체는 안중에도 없다.
미장원을 다녀오면 모든 사람의 머리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그외엔 아무것도 안보인다.
그런가하면 그 반대 경우도 있다.
근처 도장방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나는 갑자기 멍해진다.
어디서 본듯도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바로 회사앞에 있는 그 도장방을 아침저녘 지나다니면서도
도대체 기억속에는 남아있질 않는 것이다.
마치 그집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다.
세상은 내마음 끌리는대로 있기 때문이다.
조화도 그게 가짜인줄 알때까진 진짜꽃이다.
빌려온 가짜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리고는
그걸 진짜로 갚으려고 평생을 고생한
모파상의 어느 여인의 이야기도 이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내가 보는대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있다고 또 다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있는게 다보인다면 대뇌중추는
너무 많은 자극의 홍수에 빠져 착란에 빠지게 될꺼다.
그러기에 대뇌는 많은 자극중에
몇가지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선택의 기준은 그때 그때의 대뇌의 튠(TUNE)에 따라 달라진다.
정말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나같이 머리나쁜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고로 세상은 공평하다.
신나게 기분좋은 아침엔
날마다 다니는 출근길도 더 넓고 명랑해보인다.
그래서 휘파람이라도 절로 나오는 튠이 될 땐
슬픈 것들은 아에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은 우리가 보는것만 보인다.
해변에 사는 사람에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저녘, 문득 바라다본 수평선에 저녘달이 뜨는 순간,
아 ∼ 그때서야 아름다운 바다의 신비에 취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우린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느끼질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별이, 저녘놀이, 날이면 날마다
저리도 찬란히 열려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대신 우린 너무 슬픈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너무 언짢은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한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다고 물론 쉬운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반컵의 물은 반이 빈 듯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찬 듯 보인다.
비었다고 울든지, 찼다고 웃든지, 그건 자신의 자유요 책임이다.
다만 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대로 있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겠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그래서 좋다.
비바람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구름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여유의 눈이 있다면,
그위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일 것이다.
세상은 보는대로 보인다.
어떻게 보느냐
그건 자신의 책임이다
좋은글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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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가로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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