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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담

시복식 현장의 (기적)들...? 본문

종교생활

시복식 현장의 (기적)들...?

복담이 2017. 1. 6. 00:34

이태리 성지순례기(3)

희망과 확신, 제264대 교황요한 바오로2세 시복식!

지난 5월1일 거행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의 감동에 이어 교황의 시성도 급진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바티칸 전문비평가 안드레아 토르니엘리는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탐파의 금주기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살아생전 오상(五傷)의 고통을 입은

비오 신부를 예로 들었다.

비오 신부는 1999년에 복자가 되었고, 겨우 3년 뒤인 2002년에 성인이 되었다. 토르니엘리는 요한 바오로 2세도 그처럼 짧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바티칸 사상 유례없이 모인 전세계 150만명의 순례자들, 시성식에는 더많은 사람들이 모일것이다, 왜 이많은 사람들이 시복식을 찾은 것일까,

그것은 갈등과 전쟁과 불의가 만연한 온 세상에 용서와 화해로 구원의 메시지를 남긴 그분의 희망을 새기기 위해서일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을 죽이려고 총탄을 쏜 범인을 찾아가 그를 용서하고, 가톨릭이 중세기때 지은 잘못을 사죄했으며 지난 2000천년간 반목하며 지내던 타종교와의 관계를 화해와 사랑으로 이끈-

'평화의 사도' 로 전세계인의 숭배를 받고 있다.

교황은 재임기간 3번의 암살기도를 당했는데 1981년 5월13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스물세 살 터키인 청년 메흐메트 알리 아자가 교황을 향해 총격을 가한 것이 첫 번째였다. 당시 교황은 광장에서 일반 알현을 하던 중이었다. 교황은 두 발을 맞았다. 다행히 교황은 총알이 심장을 간발의 차이로 비껴간 덕분에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6시간의 대수술 끝에 4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1983년 12월27일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의 암살미수범인 아자가 수감된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를 찾아가 20분간 대화를 나눴다. 교황은 교도소를 나와 “그와 나 사이에 나누었던 이야기는 둘만의 비밀로 남을 것이다. 내게 총을 쏜 형제를 위해 기도하자. 나는 이미 진정으로 그를 용서했다”며 사면을 요청했다. 아자는 2000년에 이탈리아에서 터키로 이송되어 곧 석방됐다.

우리부부도 시복식현장에서 놀라운 체험을 나누며 그분이 인류에 선언하신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를 새기며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었다.

5월1일 새벽2시 호텔서 일어나 시복식이 거행되는 바티칸 광장으로 향하니 벌써 수십만의 군중들이 광장 입구 ‘화해의 길’ 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로마 날씨는 요즘 우리나라처럼 기온차가 심해 밤엔 추워 두툼한 파커를 입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발자욱 옮길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각국의 순례자들은 성가를 부르며 수시간을 기다리는데 침낭을 둘러메고 밤샘을 한 젊은이들도 상당수 보인다.

새벽3시경 바티칸 광장입구 화해의 길에는 수십만명이 질서정연하게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새벽 5시가 좀 지나자 입장이 시작됐다, 입장이라기 보다 떠밀리다 시피 좀더 가까운 거리서 지켜보기 위한 군중들의 행렬은 미사가 시작되는 오전10시까지 계속 됐다.

그러다 갑자기 일행을 잃어버렸다. 배우자가 먹을거리 마실거리 등을 챙기고 곁에 있어주어야 하는데 불안해졌다. 가장 걱정했던 일이 터진것이다.

인천공항서 휴대폰 로밍이 안돼 전화연락도 되지않고, 우리순례팀 일행은 시복식이 끝난 후 곧바로 아씨시로 이동하기에 혹시나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수십만명의 순례자들 틈에 태극기 찾기에 나섰다.

“아엠 쏘리” 를 연발하며 군중들을 뚫고 되돌아 가보았지만 결국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 고아가 되는것은 아닌가”

“시복식이 끝나려면 13시간정도 화장실을 참아야 되는데..”

▲ 오전10시 시복식미사가 시작되기전 여기저기서 실신환자들이 들것에 실려가는모습이 목격 되었다.

또 중앙통로로 연신 실려가는 실신 환자들을 보며 “혹시 저안에 배우자가 있는것은 아닐까,”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러는 사이 ‘화해의 길’ 중앙통로 건너편으로 태극기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평화방송 다른 조(믿음)의 순례팀이었다.

불과 10me 지척거리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주변에 소음이 워낙 크기에 소용이 없다.

비상용 중앙통로는 건너갈 수가 없기에 마치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가 떠오른다. 참으로 애처로운 순간이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스도께 문을 활짝 열어젖혀라'

일행 찾는것을 포기하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께서 우리 순례단을 다시 만나게 해주실거라는 확신이 기도 중에 들어왔다.

그리고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그리는 순례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전세계인들에 보여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순례팀 일행 60여명은 여러 사정으로 호텔로 되돌아가 TV를 보며 시복식 미사를 올렸다고 한다.)

▲ 1989년 한국여의도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는 각교구별, 지역별 구분이 돼있어 행사중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바티칸 시복식 현장에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순례자들은 꼬박 13시간 동안을 지내야만 했다.

▲ 2~3층 높이에서 내려다본 효과를 낸 리모컨 컨트롤 장비가 이번 취재에 큰 몫을 했다.

례자들이 이런 광경을 역촬영하며 신기해 하기도..

필자의 일생 중 13시간동안 화장실 한번가지 않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또한 25kg 무게의 카메라 가방도 솜털처럼 가벼웠다. 마음을 집중하면 육신은 저절로 따라 간다는 이치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벽 호텔서 나올 때, 먹을거리 마실거리를 챙겨둔 배우자는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위경련으로 몇일 동안 고생했다.

시복식 행사가 마무리 될 즈음, 어떻게 하나 하고 있을 때, 바로 작은기적(?)이 일어났다.

필자는 이번 시복식에 순례자들 틈에서 취재를 해야 했으므로 최신 리모콘 컨트롤 카메라 장비를 준비했다.

이 장비는 2~3층 높이의 위치에서 자동으로 촬영이 가능했는데 이를 지켜본 순례자들이 되려 나의 모습을 촬영하며 부라보를 연발 했고, 로마에 본원을 둔 성 바오로 딸 외국 수녀님들은 수고 한다며 교황님 상본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 중 휴대폰으로 열심히 이런 모습을 찍고 있는 한 청년에게 ‘그 휴대폰 나 좀 빌려달라’ 고 했다.

이태리 청년인지 영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발짓 해가며 말하자 결국통화에 성공했다. 통화 중 우리안내인은 시복식 끝나고 택시를 타고 어디서 만나자고 했으나 이런~ 수백만명이 일시에 빠지는 상황에서 택시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중에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정처없이 이골목 저골목으로 나가고 있는데 태극기를 만났다, 수백만명 중에 기적처럼 만난 태극기와 신부님이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뵌 분인가 했는데 김광우(세자 요한, 한국외방선교회) 신부님이라고 ME디퍼주말을 같이 수강하신 분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신부님께 사연을 말씀 드리자 그쪽 안내인을 통해 우리일행과의 연락에 성공해 합류할 수 있었다.

여곡절 끝에 우리 버스에 오르자 모두들 박수로 환호 하지만 나는 미안한 마음 그지없기만 하다.

배우자 로사도 어찌나 맘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까칠해 보였다.

13시간 동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칠텐데 이상하게도 안으론 묘한 힘이 넘치고 있었다.

필자만이 아닌 다른 순례자들도 같은 힘을 느낄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13시간을 버틸 수가 있었을까?

김광우 신부님과 함께한 순례자 중엔 부산서 오셨다는 82세의 마리아 노인도 계셨는데 시복식이 끝난 후 퇴장하는데 젊은이들 보다 더 날랜 걸음으로 기쁨에 넘쳐 있었다.

▲ 부산서 오셨다는 김 마리아 할머니는 82세의 노구에도 끝까지 행사에 참여하고 젊은이들보다 더 씩씩하게 바티칸 시복식 현장을 빠져나갔다.

아시시로 향하는 차창가로 드넓은 초원들이 펼쳐졌다. 이곳 움부르아 지방은 이탈리아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가며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하지만 순례팀에 미안해 셔터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고 싶었다.

오로지 감사하는 마음만이 앞섰다, 다행히 일행과 떨어져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하도록 이끌어 주심에 감사 드렸다.

특히 순례팀 일행과 떨어져 백만분의 일 확률속에 다시 배우자와 순례팀과 합류해 다음여정을

계속할 수 있음에 감사 드렸고,

그안에서 남아 역사에 남을 시복식의 생생한 모습을 영상에 담아둘 수 있음에도 감사 했다.

지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에 앞서 다른걱정거리도 많았지만 두려움 없이 한길만 보며 순례여정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에 도와주신것이란 확신이 섰다.

시복식을 주례하신 교황 베네딕도 16세는 복자 요한바오로 2세께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으로 강론을 마무리 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스도께 문을 활짝 열어젖혀라'

"두려워 마십시오. 마음의 창을 열고 그리스도의 권능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그리스도만이 인간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망을 아시고 이를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을 따르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사랑과 정의와 진리만이 언제나 승리함을 믿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있습니다. 아니 이제 천국에서 제가 당신들과 함께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복자 요한 바오로2세가 돌아가시기전 마지막 말씀,

"두려워 하지마라.." 강론을 하고 있다.

우리부부는 이번 시복식 성지순례에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동안 배우자와 해외여행 한번 가려 했지만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시간이 되면 돈이 없고 돈이 되면 시간이 없는것이었다,

이런 영광스런 기회는 일생 다시 오지 않을것 같았고-

출퇴근이 일정치 않아 가정생활이 불안한 30년 넘은 기자직 생활을 이토록 건강하게 지켜준 배우자가 넘 고마웠기에 혼인 30주년 선물로 바치고 싶었다.

두려움 없이 떠난 해외순례여행을 다녀와 근 한달 동안 영상작업에 매달렸다.

시복식에 참가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선물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몇날 밤을 지새고 완성된 영상물을 보며 순례단은 아주 기뻐하셨다.

보통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현지안내인이 설명해주는데도 다녀오면 감도 잡히지 않고 달포 지나면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잊어버리기 십상인데 영상제작 덕분에 이탈리아성지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 시복식의 영광을 입고 이탈리아 성지순례 중, 역사의 고도 피렌체 에서 30년 동안 행복한 부부로 이끄신 은총에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우리부부를 잘 지켜주신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 매순간마다 감사 드리며 행복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