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생인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생활을 시작한 건 11세 때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5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한 1963년 12월 청와대로 들어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26년생)은 1937년 5월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아버지 조지 6세의 대관식에서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위로 등극했다. 그 역시 11세였다.
26살이라는 나이와 동·서양의 차이를 넘어 두 사람의 왕위 등극·집권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태어났을 때 장차 왕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 조지 5세에겐 장남 에드워드 8세가 있었고,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는 조지 5세의 차남이었다. 그러나 1936년 영국 왕가에 유례 없는 일이 벌어진다. 조지 5세가 서거해 장남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가 미국인 이혼녀 심슨 부인과 사랑에 빠지며 그해 12월 왕위를 버렸다. 그래서 졸지에 차남 조지 6세가 왕위를 계승하게 됐다. 덕분에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삶도 바뀌었다. 조지 6세는 1952년 서거했고, 엘리자베스는 26세의 나이에 대영제국의 상징이 됐다.
11세에 청와대에 들어간 박 대통령의 스토리도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22세 때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흉탄에 잃고, 아버지를 곁에서 지키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5년간 하다 1979년엔 아버지마저 총탄에 잃은 점, 그래서 한동안 운둔생활을 하다 야당 정치인으로 정계에 뛰어들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 된 스토리는 해외순방 때마다 방문국 언론이 자세히 전하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청와대와 왕궁에서 자란 두 사람이 모두 감정을 절제하는 스타일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랄 때 “사적인 감정은 드러내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의 아버지 조지 6세가 갑작스러운 왕위 계승에 심적 불안감을 느낄 때 곁에서 위로하곤 했다. 2011년 아카데미 영화제 4관왕인 영국 영화 ‘킹스 스피치(King’s Speech)’의 실존 인물인 조지 6세는 말을 더듬어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렸다고 한다. 박 대통령 또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해 경황이 없는 중에도 “전방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강한 여성’이란 점도 공통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끝 무렵인 1945년, 엘리자베스 여왕은 군인이 돼 군용 트럭을 몰았다. 영국 왕가의 여성 중 처음이자 마지막 참전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순방 당시 현지 언론이 동양에서 온 ‘아이언 레이디(Iron Lady·철의 여인)’로 불렀다.
런던=신용호 기자, 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