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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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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담이 2020. 1. 8. 19:36


 


 


 


 


 

 

제목 (20/5/12) 기념

(20/5/12)

기념일 : 국제 간호사의 날, 1820년에는 영국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출생

◇ 루비 브래들리 대령

미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루비 브래들리 대령이 한국에 없었더라면 미군 전사자의 수가 훨씬 늘었을 것이라고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믿고 있다.

루비 브래들리(Ruby Bradley)는 1934년 27살의 나이로 미 육군의 간호부대에 수술전담 간호사로 입대했다.

그녀는 진주만 공격 직후 필리핀 미군 기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도중 일본군에 전쟁포로로 끌려갔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끝날때 까지 포로생활을 이어갔다. 브래들리는 포로생활 중에서도 함께 포로로 끌려온 미군들의 건강을 돌봤다. 특히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인체실험을 견뎌낸 미군들에게 직접 맨손으로 수술을 진행하기도 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브래들리는 미국 본토로 돌아와서 간호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졸업식과 동시에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녀는 소령 신분으로 제171 후송병원 소속이 되어 한반도로 향했다.

1950년 11월,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반격해왔을 때 브래들리는 평양에서 미군과 국군을 치료중 중공군 10만에 에워싸였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은 채 부상자들을 모두 비행기와 헬기에 실어 보낸 그녀는 자신의 구급차가 포탄에 터지는 가운데서 가장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브래들리는 이 공로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훈장과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는다.

1951년, 브래들리는 미 제8군사령부의 수간호사로 임명되어 한국에서 활동중인 미 육군 간호사 500여명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동안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무려 230회의 수술을 직접 진행했다.

1958년, 대령으로 최종 진급한 브래들리는 1963년 전역했다. 지금까지 무려 23개의 훈장을 받은 브래들리 대령은 2002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그녀의 묘지는 알링턴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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