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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삼성을 대표하는 연사...110센치 키...

복담이 2012. 9. 15. 23:29

 

삼성을 대표하는 연사...110센치 키...

삶을 반전시키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감동 스토리)

키 110cm 이지영씨, 삼성그룹 대표해 대학생 1만명 앞에서 18일 강연

이지영 삼성테크윈 대리가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했다. 110cm의 작은 키에 굴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그는 오는 18일 삼성그룹 직원을 대표해 대학생 1만 명 앞에서 강연한다.

이지영 삼성테크윈 창원사업장 인사팀 대리(28·여)는 키가 110cm밖에 되지 않는다. 희귀병인 가연골무형성증을 앓은 뒤부터 자라지 않았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그룹인 삼성을 대표해 1만 명의 청중 앞에 선다. 대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이 대리는 18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체육관에서 열리는 ‘열정락서’에서 강단에 선다. 열정락서는 삼성그룹이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강연 행사다. 이날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 김난도 서울대 교수, 역도선수 장미란 등이 연단에 함께 오른다.

삼성그룹은 공모를 거쳐 열정락서에서 강연할 일반 직원 10명을 뽑았다. 지원한 220명을 자기소개서 심사로 40명으로 압축한 뒤 오디션을 거쳐 이 대리 등을 선정했다. 심사에 참여한 삼성그룹 관계자는 “오디션을 위해 처음 만난 그의 외모에 깜짝 놀랐고, 그의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에너지에 또 한 번 놀랐다”고 말했다.

11일 이 대리를 만났다. 공모 때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괄호 안의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다.

 

○ 내 모습이 미웠어요

어딜 가든지 한 번 저를 본 사람은 절대 잊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저를 모르는 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죄송합니다. 반갑게 인사하는데 저는 상대방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기억해 주는 사람.’ 110cm의 작은 키가 나에게 준 선물입니다.

예전엔 내 모습이 미웠습니다. 남과 다른 외모. 예쁜 쪽이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요. 어렸을 땐 거울을 보지 못했습니다. 작은 키에 뚱뚱하고 짧은 팔과 다리.

이 모습이 나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6세 때 유치원에 갔습니다. 원복은 너무 길었고, 가방은 컸습니다. 아이들의 놀림도 괴로웠습니다. 짝꿍과 손잡고 걸어가는 소풍은 저에겐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 등에 업혀 뒤따랐습니다. 엉엉 울어 어머니 등이 흠뻑 젖었습니다.

(장애는 2세 때 생겼다. 3년 뒤 정확한 병명이 나왔다. 가연골무형성증. 유전자 이상으로 뼈에 문제가 생겨 키가 자라지 않는 병이다. 그를 뺀 식구들은 키가 헌칠하다. 이 대리는 “어릴 때 놀림을 너무 많이 당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우울해진다”고 했다. 친구들 눈에 띄기 싫어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던 고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 부정적 생각, 아무 도움이 안 됐어요

장애는 나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내 잘못도, 부모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집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생각했습니다. “내 모습 그대로, 남과 다름을 즐기자. 체육을 잘할 수 없다면 국어를 잘하면 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할 수 없다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 돼. 나 자신을 인정하자. 욕심 부리지 말자.”

생각을 바꾸니 사소한 행복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남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가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생각을 바꾼 그 순간이 기적처럼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만큼 해봤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직도 그는 ‘강철 같은 여인’은 아니다. 주변의 특별한 시선에도 개의치 않는 자신을 보며 ‘내가 무슨 로봇이 된 것 같다’고 마음 아파할 정도로 여리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도전의 즐거움’이었다.)

손 운전을 배웠습니다. 처음엔 팔이 빠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결국 베스트 드라이버가 됐습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주최한 희귀질환자 돕기 마라톤에서는 마비되는 다리와 2시간을 씨름하며 걸어 5km를 완주했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어학연수를 위해 호주로 떠났습니다. 내 키만 한 ‘이민가방’ 2개를 끌지 못해 뒤에서 밀면서 갔죠. 묵게 된 원룸의 엘리베이터 버튼이 너무 높아 누를 수조차 없었죠. 버튼 옆에 못을 박고 집게를 걸어 사용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외국인 친구들이 나를 응원해 줬습니다.

(그는 진해에서 중고교를 나와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땐 우수졸업상을 받았다.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 대리는 “도전에 성공하면 ‘장애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며 남들보다 더 큰 칭찬을 받았다. 내가 받는 혜택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 남들과 다른 나에겐 늘 새로운 일이

취업을 앞두고 차가운 사회의 시각과 벽에 부닥쳤다. ‘나는 남들과 다를 뿐 열등하지 않다’고 했던 마음가짐이 흔들렸습니다. “장애인이 어떻게 고객을 만나는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면접관의 질문에 모욕을 느꼈습니다. 바위처럼 굳은 나를 다른 지원자들은 비웃었습니다. 원망스러웠지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문제는 열심히 살아 온 나한테 있지 않아.

다양한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야.’

(60개 회사에 원서를 넣어 12곳에서 필기시험을 치렀다. 필기시험 후 7곳에서 면접을 봤는데 모두 떨어졌다. 그를 보자 면접관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예 질문을 못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2007년 8월 삼성테크윈은 그를 채용했다.)

이제는 삼성에서 남 앞에 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입니다. 경력사원이나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그들 앞에 서서 안내를 하고, 강의도 합니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사업장 투어도 합니다. 앞으로는 삼성의 이름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습니다.

올해엔 삼성그룹 신입사원 교육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멘토(조교) 역할을 했습니다. 새로 입사한 후배를 처음 만나는 ‘삼성의 얼굴’인 셈이죠. 이제 열정락서 무대에서 1만 명의 대학생 후배들 앞에 섭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남들과 다른 당신을 불편해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그 ‘다름’이 당신에게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