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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 페르귄트 조곡-제2 모음곡 Herbert von Karajan / Berliner Philh 본문

북유럽

그리그 페르귄트 조곡-제2 모음곡 Herbert von Karajan / Berliner Philh

복담이 2011. 3. 19. 07:44

 

 

 

 

그리그 / 페르귄트 조곡 -

제2 모음곡 Herbert von Karajan / Berliner Philharmoniker


그리그 / 페르귄트 조곡 - 제2 모음곡
Peer Gynt Suite for Orchestra No.2 Op.55


◁ Edvard Grieg (1843-1907) ▷


Herbert von Karajan / Berliner Philharmoniker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는 자신의 음악이
서정적이어 극음악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입센의 환상시극 '페르 귄트를 작곡함에
있어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입센의 위촉을 받아
무대 음악으로 이곡을 작곡하기 시작하는데,
31세 때 이 곡을 쓰기 시작하여 다음해
여름에 완성하여 명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피아노 2중주의 형식으로
출판되고 후에 오케스트라로 편곡되었다.
이 곡들은 5곡의 전주곡을
비롯하여 행진곡, 무곡, 독창곡, 합창곡 등
모두 23곡으로 되어있다.
그는 후에 이 극음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4곡을 뽑아 제1모음곡으로 하였으며,
후에 다시 4곡을 선정하여 제2모음곡으로 만들었다.



솔베이그의 노래


극의 줄거리

제 1 막  어려서 부친을 잃은 페르 귄트는
편모 슬하에서 자랐는데,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게으름이 몸에 밴 데다가
허황된 꿈만 ?고
있기 때문에 모친 오제의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솔베이그라는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마을 결혼식에 나가서 다른
남자의 신부 잉그리드를 빼앗아 산속으로 달아난다.

제 2 막  페르 귄트는 얼마되지 않아
곧 잉그리드를 버리고 산중을
방황하다가 푸른 옷을 입은 아가씨를 만난다.
곧 뜻이 맞아서 그녀
부친있는데로 간다.
그곳은 산에서 사는 마왕의 궁전인데,
녀는 마왕의 딸이었다.
마왕이 페르 귄트에게
그의 딸과의 결혼을 강요하므로
는 깜짝 놀라서 그곳을 빠져나오려 한다.
마왕은 화가나서 부하인 요괴를 시켜서
그를 죽이려 들지만,
그때 마침 아침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고
마왕의 궁전은 순식간에 무너져,
페르 귄트는 간신히 살아 남는다.

제 3 막  산에서 돌아 온 페르 귄트는
잠깐 솔베이그와 같이 산다.
어느날 모친 생각이 나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모친은 중병으로 신음하다가,
아들의 얼굴을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페르 귄트의 곁에서 운명하고 만다.
모친을 잃은 페르 귄트는 다시
모험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

제 4 막  각지를 돌아다니는 동안에
큰 부자가 된 페르 귄트는 어느날
아침 일찍 모로코의 해안에 닿는다.
그러나 사기꾼에게 걸려서 다시 빈털털이가 된다.
러자 이번에는 예언자 행세를 하여
순식간에 거부가 되어 아라비아로 들어간다.
거기서 베드윈족 추장의 주연에 초대된다.
아라비아 아가씨들과 추장의 딸 아니트라의
관능적인 춤으로 대접받은 페르 귄트는
아니트라의 미모에 빠져
또다시 전재산을 탕진하고 만다.

제 5 막  그 뒤 페르 귄트의 생활은
여전히 파란만장. 마지막에는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으로 큰 부자가 된다.
이제 늙어버린 페르 귄트는
고국의 산천이 그리워서
그 동안에 번 제물을 싣고 귀국길에 오른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육지를
눈앞에 두고 풍파를 만나
그의 배는 재물을 실은채로
물에 갈아앉아 버린다.
다시 무일푼이 된 페르 귄트는
거지나 다름없는 꼴로 산중 오두막에 다다른다.
그곳에 이미 백발이 된 솔베이그가
페르 귄트를 기다리고 있다.
페르 귄트는 그녀를 껴안고
'그대의 사랑이 나를 구해주었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 쓰러진다.
늙고 인생에 지친 페르 귄트는
이윽고 솔베이그의 무릎을 베고,
그녀가 노래하는 상냥한 자장가를 들으면서
그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한다.


제 2 모음곡 구성

제1곡 신부의 약탈 - 잉그리드의 비탄
(Bruderovet - Ingrids Klage)


제1막에서의 전주곡으로
화려한 기분을 자아냈던 혼례 장면의
음악이 여기서는 단조로 바뀌어
제2막의 전주곡이 되어 격정적으로 연주된다.
이 주제는 약탈의 주제라고도 불리운다.
중간에는 3/4박자 비탄의 선율이
잉그리드의 탄식을 묘사하며
차분히 울려 퍼지고,
다시 혼례 장면의 음악이 나온다.
페르 귄트는 힘들여서
약탈한 신부 잉그리드에게도
곧 싫증을 느껴 다음의
모험을 찾아 홀로 마왕이 사는
산 속으로 들어간다.

Allegro con brio D장조 2/4박자 - Andante doloroso g단조 3/4박자



제2곡 아라비아의 춤
(Arabischer Tanz, Arabian Dance)


제4막에 나오는 아라비아 추장 앞에서
추는 소녀들의 춤이다.
경쾌한 활기를 띤 춤곡으로서
동양의 이국적인 매력에 반해버리는
페르 귄트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 하였다.
그는 마치 예언자처럼
가장하고 춤을 보고 있다.
 아라비아의 아름다운 소녀들은
 "예언자가 나타났으니 풀루트와 탬버린이여
기뻐 소리를 외쳐라"하면서
합창을 하며 춤을 추는 것이다.
소녀들을 상징하는 음악과
아니트라를 상징하는 음악이 나타난다.

C장조 4/4박자



제3곡 페르귄트의 귀향
(Peer Gynts Heimkehr, Peer Gynt's Return Home)


제5막에 나오는 폭풍이 센 해안의 저녁이다.
페르 귄트는 미국에서 금광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는데
노경에 접어들어 고향에
돌아가 편히 지내려고 배에 오른다.
그러나 배는 노르웨이 해안
에서 풍랑을 만나 난파하고,
그는 무일푼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천지를 뒤엎는 큰 폭풍우의 정경을
여실히 표현하였다.

Allegro agitato f#단조 6/8박자



제4곡 솔베이그의 노래
(Solvejgs Lied, Solveig's Song)


너무나 유명한 이 멜로디는
이 극에서 세 번 나타난다.
그 중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것은
제3막에서 뿐이고, 제4, 제5막에서는
소프라노의 독창이 나타난다.
꿈을 그리면서
헤메이던 몽상가 페르 귄트는
기쁨과 슬픔이 얽힌 오랜 여정을 마치고
지친 늙은 몸으로
고향의 오막살이로 돌아 오게 된다.
백발이 된 솔베이그의 무릎에 엎드려
그녀의노래를 들으며
평화스런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Un poco Andante a단조 4/4박자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 가노라 널 찾아 가노라"


페르귄트 (Peer Gynt)

노르웨이 극작가 H. 입센의 5막 극시.
1867년 P.C. 아스비외른센의 민화에서
취재하여 극화하였다.
페르는 타고난 몽상가이며
허풍장이·난봉꾼이고 무법자이다.
사랑하는 처녀 솔베지의 애원과
어머니의 죽음도 페르귄트의
이러한 생활방식을 고치지 못하였고
 미국, 중국,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여러가지 모험을 치룬 후에
얻은 것은 헛되이 버린 세월과
인생에 대한 환멸이었고,
패배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는 솔베지가 처녀로 늙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페르귄트는 그녀의 순수한 사랑으로
영혼의 구제를 받는다.

J.W.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영혼의 순례극이라 할 수 있다.
E. 그리그는 이 작품을 토대로
관현악곡 《페르귄트모음곡
(제 1 모음곡 op.46,
제 2 모음곡·op.55, 1888∼91년)》을
작곡하여 노르웨이적 정서를 아름답게 그렸다.


 
 

 

 

 

 

그리그의 고향이자 노르웨이의 제2수도 베르겐 항구

 

 

 

 

 

 

 

 

 

 

 

 

 

 

                                             

  노르웨이의 낭만적인 도시

베르겐의 뷔르겐거리입니다 

   거리 악단 공연을 보구 감상한 후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길 건너 도로를 오고가는

                       관광객들과 뷔르겐 시내의 질서있는 사람들의 모습

 

 

 

 

 

 

한자동맹 시대에 수도였던 베르겐

1250년대의 건물이지만

지금까지 튼튼하고 아름답습니다

세계 자연문화 유산으로 등록 되어있습니다

이 건물은 주로 식당과 커피향이 짙은

고풍스런 건물과 잘 어울리는

거리 커피점도 있습니다

 

 

 

 베르겐 시장  거리에 오케스트라 공연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스포츠 댄스를 신나게 ㅎㅎㅎ

그 모습을 바라 본 후 웃음바다 ㅋㅋㅋ

 

 

 

 

 

 

베르겐 박물관 앞에서

아래사진은 베르겐 박물관입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그리그작곡가는 베르겐 외곽에 있는

트롤(요정) 숲길을 부인과 함께 산책하고 걸으면서

페르귄트 모음곡을 작곡했답니다

솔베이그의 노래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이 이런 요정의 숲을 산책하시며

만들어진 작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 동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그의키는 1m52cm  동상도 실물의 크기입니다

          그래도 참으로 멋져보이십니다

 

 

 

          

 

노르웨이로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모습들의 지붕이 많이 보였습니다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선착장 옆 화장실을 다녀오다 돌아보면

지붕위에 야생화들이 곱게 피어있기도 했습니다 

 

 

 

 

멋진 풍경 속에 작곡을 하기위한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나올 듯 한

멋진 그리그의 동상

 

 

 

 

노르웨이의 자연풍경은 한폭의 그림

하늘에서 내려준 풍경은 낙원같고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1863년 코펜하겐에서 부인이 된 성악가 니나를 만나 

이때에 (마음의 멜로디1865년)를 쓰며 결혼

그리그의 어머니도 피아니스트였으며

그의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받고 초기 교육도 담당하고

독일에가서 음악교육을 받아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그 작곡가 생가에 전시된

 생전에 사용했던 피아노

 

 

어머니로 부터 초기교육을

독일 음악식으로 교육을 받았던 그리그는

민족주의 작곡가였지만 독일에서 교육을 받은대로

독일 양식이 강했고 벽에는 

고전시대의 유명한 초상화들로 가득 채워져있습니다 

 

 

 

그리그가 많은 사람들로 부터 받았던

선물로 장식 된 거실

 

 

그리그의 작곡실 내부

이 실내에서 수많은 유명한 작곡들이 탄생했을 것입니다

 

 

 

그리그의 무덤

아름다운 피요르드를 바라보게 되는 무덤보다

돌 무덤에 묻히기를 원했던 그리그는

1907년 9월 4일 64세로 생을 마감 했습니다

그리고 이 무덤에는 성악가인 사랑하는 부인 니나와

함께 묻혀 있다고 합니다

 

 

그리그의 돌 무덤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