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역사.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 "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다시 본 한국전쟁..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땅에서 꽃다운 삶을 마감한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를 추모하면서 정리한 자료 입니다.
1. 파리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
파리 세느강 마레다리 근처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기념비
2. 호주캔버라 Korean War Memorial, Canberra
한국전쟁 가평전투에 참가한 호주군인들
3. 캐나다
Wall of Remembrance(Brampton, ontario, *- 한국전쟁기념비 -*
4.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링컨기념관 인근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 (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의 기념 조형물은 미국 성조기를 향해서 우비를 입은 한 소대가 전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각상 양쪽으로 서 있는 벽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2, 500명의 얼굴들이 레이저로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 150만 명이 참전하여 5만 4000명이 사망하고 11만 명이 잡히거나 부상당했으며, 8, 000명이 실종되었다.
가운데 게양되어 있는! 성조기 아래에는 "조국은 그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한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라고 적혀 있다.
5. 맨하탄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장소가 뉴욕 맨하탄의 최남단 배터리 파크 내에 있다.
배터리 파크 내에는 수많은 기념물과 기념탑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념물이 군인 형상의 구멍 뚫린 조각물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다.
6. 미국 Connecticut (컨네티컷) West Haven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7. 미국 Atlantic City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8. 미국 Staten Island에 위치한
Korean War Veterans Parkway
9. 보스톤의 한국전쟁기념비
☞ Korean War Veterans of Massachusetts, Charlestown Navy Yard
출처: 오니온맵 플로그 찰리의 사진첩
10.남아공의
케이프타운 한국 전쟁 참전 기념비
11.터키 한국전쟁 참전기념탑
한국전쟁 참전 토이기(터키)기념탑에 있는 참전 희생자 명단
터키 수도 앙카라 한국 공원에 있는 높이 9m의 4층짜리
‘한국전쟁 참전토이기(터키)기념탑’
서울-앙카라 자매결연을 계기로 1973년 11월, 1년여간 시공을 거쳐 세워진 탑이다.
12.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촌(한국마을)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에티오피아군은 화천, 금화, 양구, 철원 등 강원도의 최전방지역에서 공산침략군과 싸웠다.
한국전 참전 16개국 중 유일하게 포로가 없을 정도로 에티오피아군은 가장 용맹스러운 군대였다고 한다.
춘천시는 국가보훈처의 후원으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아픈쵸베르 공원에 참전용사회관과 기념탑을 건립했다
*< 국내 6.25 참전 기념비 >*
1. 유엔군 초전기념비(경기 오산시)
유엔군 참전기념비는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1950년 7월 5일 미군 제 24사단 소속
제21보병부대 및 제 52 야포대대 소속 1개 중대로 편성된 스미스 전투부대 406명의 장병이 북한과의 최초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1955년 7월 5일 미군 제 24단과 장병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2.UN묘지 ( 부산 남구 대연동 779번지 일대)
남구 대연동 779번지 일대의 면적 144, 146㎡로 유엔 묘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도발에 의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
한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16개국의 전투지원국과 5개국의 의료지원국의 유엔군 장병의 전사한 영령을 안치한 곳이다.
1951년 1월 18일에 묘지를 조성 설치하고, 1955년 11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에서 오직 하나 뿐인 유엔 관리의 묘지로,
1959년 유엔과 우리정부 사이에 묘지의 영구적인 관리 및 사용을 위한 협정이 성립되었으며, 1974년에는 관리권이 영령을 안치한 참전국 11개국으로 구성된 국제연합기념관리위원회에 이관되었다.
현재 이곳에 안치된 영령은 영국 884, 터어키 462, 캐나다 378, 오스트레일리아 281, 네델란드 117, 프랑스 44, 뉴우질랜드 34,
미국 19, 남아프리카공화국 11, 노르웨이 1, 한국 36, 무명용사 4, 비전투원 11기로서 총 2, 282기가 안치되어 있다.
처음 이곳에 묘지가 설치될 때 묘의 수는 미국 등 16개국 11, 000기 이었으나 이디오피아, 태국, 그리이스,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등
5개국 전몰장병 묘를 이곳에서 본국으로 이장해 갔기 때문에 현재의 기수(基數)로 줄었다.
▲ 묘역내 기념관 내부 ▲
3.유엔군 참전기념비
높이 12.05m, 16개의 기둥으로 탑신을 이루고, 기둥의 중간부분에 각국 의 특색을 살린 군인상을 청동으로 조각해 붙였으며, 기둥끝에 각국의 국기를 게양토록 했다.
세계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건립된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APEC정상회의 참석차 부산을 찾은 뉴질랜드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졌다.
<노을05 운영자 메일,10.6.19>
Mozart Requiem KV626 (진혼곡)
Mozart / Requiem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4.한국전쟁 유엔군 자격 참전국 현황
한국전쟁 유엔군 자격 참전국 현황
한국전쟁 참전군은 UN과 중공군 모두 합해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한다 부상자들과 그 가족까지 합하면 몇 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한국전쟁으로 피눈물을 흘린 것이다.
Click! Korean Wa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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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
내용 |
북한군의 남침 |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웅진반도에서 시작된 전쟁은 곧 38선을 연하여 동쪽으로 확대되었다.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북한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남한군을 격파하며 개전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는 등 신속하게 전세를 장악했다. |
유엔군 참전 |
미국은 6월 26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하여 북한의 무력공격은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로 규정하였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회원국들에 대하여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평화와 한반도에서의 안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권고를 채택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조치를 추후승인하기에 이르렀다. |
인천상륙작전 |
한달여만에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게되자 연합군은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 15일 서울에 진입하게 된다. 서울을 완전히 회복한 뒤에는 38도선을 지나 원산, 평양까지 탈환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
중공군의 개입 |
유엔군의 공세가 가속화되자 중공군이 개입하게 되어 전세는 다시 역전이 되고 장기화활 조짐이 나타났다. |
1.4후퇴 |
중공군의 원조에 힘입은 북한군은 다시 38선을 넘어 남진하였다. 이때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
정전제의와 휴전회담 |
유엔주재 소련대사 말리크가 유엔연설을 통해 1951년 6월 23일 휴전을 제의하였다. 종전을 원하던 중공과 북한은 휴전을 지지의사를 표명하였고, 미국도 긍정적인 입장을 밝힘으로써 7월 개성에서 정전협상이 시작되었다. 이후 정전협상이 체결될때까지 38선 부근에서는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
판문점 접촉 |
유엔군사령관은 양측전선 중간지점에서 회담을 가질 것을 제의하면서 판문점이 새로운 회담장소로 결정되었다. 미국의 실질적인 의도는 적을 유엔군 관할지상에 끌어들임으로써 발언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였으나 이것은 개성을 잃게 된 원인이 되었다. |
휴전협정 서명 (1953.7.27) |
전쟁 당사자인 한국을 제외하고 유엔군과 북한군 및 중공군은 전문과 5조 60항의 정전협정문에 서명하였다. 이로써 3년 1개월 동안 지리하게 이어졌던 전쟁은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태로 남과 북이 대치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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