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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취임기념 우표 본문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기념 우표
1948.7.24 (7.20 당선) - 이승만 초대 대통령 취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1948년 7월 24일 중앙청 광장에서 거행됐다. 5월 10일 남한 지역만의 총선거 실시, 5월 31일 초대 국회 개원,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 및 정부조직법 공포에 이어 7월 20일 신익희의 사회로 열린 초대 국회 제33차 본회의에서 무기명투표로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개표결과 108표로 이승만 박사가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며 김구 13표, 안재홍 2표, 서재필이 1표를 얻었다. 부통령에는 이시영이 선출됨에 따라 이날 국회 주최로 정-부통령 취임식이 열리게 됐다. 7월 27일 국회에 출석한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총리에 이윤영을 지명했으나 인준이 부결됐고 2차 지명을 받은 이범석이 8월 1일 인준을 받았다. /조선
1952.9.10 - 이승만 제2대 대통령 취임
1956.8.15 - 이승만 제3대 대통령 취임
1956년 대선의 해가 다시 밝고, 여당인 자유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서로 유세를 하는 도중에 민주당 초대 총재이자 대통령 후보인 신익희가 병사했다. 그 당시에는 대통령 후보를 마음대로 못바꿨기 때문에, 부통령 후보인 장면만 내세웠다.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이승만, 부통령 장면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자유당은 더 큰 권력을 원했고, 이기붕 역시 그러했다. 또한, 1959년에는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봉암을 간첩죄로 사형시켜 버린다. /캠페인위키아
http://ko.campaigns.wikia.com/wiki/%EC%9D%B4%EC%8A%B9%EB%A7%8C
1960.8.13 - 윤보선 제4대 대통령 취임
(1960, 본인이 우표에 등장하는 것을 고사하여 새정부 수립 기념 우표만 발행)
1963.12.17 (10.15 당선) - 박정희 제5대 대통령 취임
5.16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씨가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제3공화국이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때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만주국 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로 활약했다. 일본이 패망하자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국방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의 전신)를 거쳐 국군 장교가 되었다. 여순반란사건에 이은 숙군(肅軍) 과정에서 남로당 비밀당원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1963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제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박정희는 경제를 발전시켜 절대빈곤을 해결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집권 후기로 갈수록 반민주적인 독재체제를 강화시켜 수많은 반대 세력을 낳았다. 결국 정치적,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집권층 내부의 갈등이 도화선이 되어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됐다. /조선
1967.7.1 (5.3 당선) - 박정희 제6대 대통령 취임
"1967년 7월 1일은 우리 온 국민이 경축하는 가운데 맞이하는 제6대 대통령 취임 기념일이다.
지난 5월 3일 제6대 대통령 총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재선된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 4년간의 제5대 재임(在任) 기간중 특히 이나라 조국근대화(祖國近代化)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국민의 복리(福利) 증진과 국가 발전에 과감하고 의욕적인 모든 정책을 수립 실천하므로서 민족중흥(民族中興)과 번영의 터전을 마련하였거니와 그 중에서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성공적인 완수는 세계만방에 과시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이제 다시 4년간 대한민국의 영도자(領導者)로서 이나라의 국사를 다스리게된 제6대 박정희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시발점에서 조국근대화의 정치이념을 견지(堅持)하고 국가 백년대계의 경제발전은 물론 근대적 공업국가로서의 면모 일신을 위하여 모든 면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우리 온 국민은 박대통령 영도하에 조국근대화와 자손만대의 번영을 위한 작업 대열에서 맡은바 자기 직분을 다 하여야 하겠다." (우표발행안내) /Kstamp
1971.7.1 (4.27 당선) - 박정희 제7대 대통령 취임
"1971년 7월 1일은 우리나라의 제7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지난 4월 27일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선출된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영도자로서 조국과 겨레를 위해 과거의 시정 목표인 일면국방, 일면건설의 기조 위에서 자주국방, 자립경제, 자조정신을 구현하여 조국 근대화와 조국 통일을 위해 계속 추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 와서 정치, 군사 및 경제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눈부신 발전을 보아 저개발 국가를 벗어나 중진국 대열에 서게 되었는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영도력과 정열적인 애국심의 발로는 물론, 이미 성공적으로 수행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현재 수행중인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4년간 우리나라의 영도자로서 국사를 다스리게 된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조국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뜻에서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우표발행안내) /Kstamp
1972.12.27 (12.23 당선) - 박정희 제8대 대통령 취임
1972년 오늘(12월 2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는 제8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 전원이 참석했다.
개표 결과 단독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현직 대통령이 무효 2표를 제외한 2,357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선거는 유신체제 속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선거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YTN
1972년 12월 27일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공포함으로써 유신체제가 수립되었다. 박정희는 파행적인 경제 상황과 정치적 위기를 강력한 체제 구축으로 대응하기 위해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10월유신)을 발표했다. 비상계엄령의 선포, 국회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의 금지, 새 헌법개정안의 공고 등이 그 내용의 골자였다. 이후 비상국무회의가 마련한 유신헌법안, '조국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새 헌법개정안'이 11월 21일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되었다. 유신헌법의 주요 내용은 국민 기본권의 대폭 축소, 입법부의 국정감사권 박탈,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에 의한 국회의원 1/3 선출,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 등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권한 부여, 6년으로 대통령 임기 연장과 중임제한조항 철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간접선거 등이다. 장기집권을 위한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1979년 10·26사태로 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브리태니커
1978.12.27 - 박정희 제9대 대통령 취임
1978년 12월 27일은 우리나라의 제9대 대통령이 취임하시는 뜻깊은 날이다.
지난 7월 6일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제9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이날 취임하시는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제8대 대통령 재임 기간동안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해 놓으셨다.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수출 100억달러, 1인당 국민총생산 1천달러가 상징하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자주국방력의 강화, 국민정신의 계발, 민족문화의 창달등 경이적인 국력신장으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대열에 발돋움하는 ""세계속의 한국""으로 도약시킨 위대한 전진의 기록을 남기셨다.
이제 온 국민이 경축하는 가운데 제9대 대통령에 취임하시는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대망의 80년대를 열어가는 새 시대의 원대한 청사진과 ""선진한국""의 희망찬 미래상을 겨레와 인류앞에 힘차게 펼쳐 가실 것이다.
체신부에서는 이날을 맞아 민족사에 길이 빛날 제9대 박정희 대통려의 취임을 경축하고, 온 겨레가 한마음 한 뜻으로 민족중흥의 위대한 영도력과 지도 이념을 높이 받들어 새역사 창조의 힘찬 전진을 계속할 것을 다짐하는 뜻에서 이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1979.12.21 - 최규하 제10대 대통령 취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헌법 제48조 규정에 따라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취임해 10월 27일 새벽4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전국의 대의원 2천5백60명중 2천5백49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의원 8백27명의 추천을 받은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비상계엄령을 해제했다.
단독으로 입후보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찬성 2천4백 65표, 무효 84표로 대통령에 당선, 1979년 12월 21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조선
1979년 10월 26일 제9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가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 부장 김재규(金載圭)에 의해 살해되고, 같은 해 12월 27일 최규하(崔圭夏)가 제1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나, 재임 8개월 만인 1980년 8월 사임하였다. 그러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국무총리 박충훈(朴忠勳)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국가원수의 궐위 기간을 최소한으로 단축시킴으로써 영도자의 공백에서 오는 혼란과 국가 기능의 정체(停滯)를 막는 일이 정부가 해야 할 급선무"라고 밝히고 "빠른 시일 안에 국가 영도자를 선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1979년 12월 21일은 우리나라 제10대 대통령이 취임하시는 뜻깊은 날이다.
전국민의 총의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 신임 최규하 대통령은 1919년 7월 16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셨고, 1945년 관계에 투신한 이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맡은바 직무를 수행해오셨다.
주 말레지아대사, 외무부 차관, 장돤등 정부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그 투철하신 애국심과 탁월하신 능력을 평가받아 1975년 12월 19일 국무총리로 임명되셨으며, 평소 업무에 대해서는 치밀하고 철두철미 하시면서도 아랫 사람에게는 친화감을 주는 서민재상으로서 존경을 받아 오셨다.
우리 온 국민은 신임 대통령께서 헌정의 중단없는 현 난국의 수습과 국가의 계속적인 발전 나아가서는 사회 경제발전에 부흥하는 정치발전을 위한 기반조성을 이룩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체신부에서는 민족사에 길이남을 제10대 대통령 취임을 경축하고 번영과 영광의 80년대의 푸른 희망을 맞아 온 겨레가 새 대통령과 더불어 총화단결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새 역사창조의 민족적 과업에 참여하여 힘찬 전진을 다짐한다는 뜻에서 이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www.encyber.com /Google
1980.9.1 -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
1979년 10월 26일 제9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가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 부장 김재규(金載圭)에 의해 살해되고, 같은 해 12월 21일 최규하(崔圭夏)가 제1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나, 재임 8개월 만인 1980년 8월 사임하였다. 그러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국무총리 박충훈(朴忠勳)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국가원수의 궐위 기간을 최소한으로 단축시킴으로써 영도자의 공백에서 오는 혼란과 국가 기능의 정체(停滯)를 막는 일이 정부가 해야 할 급선무"라고 밝히고 "빠른 시일 안에 국가 영도자를 선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統一主體國民會義)는 1980년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7차 회의를 열고 제11대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였다. 선거 방식은 제8∼10대 대통령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유신헌법에 의거해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선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선거 결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신군부 출신의 전두환(全斗煥)이 단독 후보로 출마해 통일주체국민회의 재적대의원 2,540명 중 2,525명(투표율 99.4%)이 출석한 가운데 2,524명의 찬성을 얻어 당선되었다. 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을 취하였고, 같은 해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는데, 이 선거가 제4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선거였다.
1980년 9월 1일은 우리나라 제11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뜻깊은 날이다.
이날 취임하는 전두환(全斗煥) 대통령께서는 온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회 각계각층의 추대로 헌법에 따라 지난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10·26사태 이후 이땅에 조성되었던 엄청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역사에 새 시대를 개막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국가보위 체제를 이끌어 단시일 안에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고, 사회의 안정을 이룩하는 한편, 과감한 사회정화로 정의가 지배하는 새 시대의 윤리적 바탕을 굳건히 하였다. 짧은 기간에 새 시대의 새 기풍을 조성하여 국가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경륜을 발휘한 것이다.
이제 온 국민의 경축 속에 새 시대 새 영도체제는 출범하였다.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80년대 민주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민주정치의 토착화, 복지국가의 건설, 정의사회의 구현 등 새 시대의 원대한 국가 지표를 겨레와 인류 앞에 힘차게 펼쳐 갈 것이다.
정부는 민족사의 새 기원을 열 제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에 즈음하여 온 겨레가 함께 경축하고 온 국민이 함께 뭉쳐 새 영도자의 지도이념을 높이 받들어 새 시대 새 역사 창조를 위해 힘차게 전진할 것을 다짐하는 뜻에서 이 기념 우표를 발행한다
http://www.encyber.com/search_w/ctdetail.php?gs=ws&gd=&cd=&q=&p=&masterno=767198&contentno=767198
1981.3.3 (2.25 당선) - 전두환 제12대 대통령 취임
1981년 2월 11일 전국 1,905개 대통령선거인선거구에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5,272명의 대통령선거인이 선출되었다. 이 가운데 당선이 취소된 1명을 제외한 5,271명으로 구성된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해 1981년 2월 25일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별로 투개표가 실시되었다. 후보는 민주정의당의 전두환(全斗煥), 한국국민당의 김종철(金鍾哲), 민권당의 김의택(金義澤), 민주한국당의 유치송(柳致松) 등 4명이었다. 선거 결과 전두환 후보가 유효투표수의 90.2%인 4,755표를 얻어 압도적 표차로 당선, 같은 해 3월 3일 임기 7년의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이날 취임하는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 선거인의 압도적인 지지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국가의 갖은 어려움과 민생의 불안정을 극복하고 1980년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오로지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융성을 위한 민족적 소신을 불태워 왔으며, 이제 정치ㆍ경제ㆍ군사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국정 분야에 걸쳐 안정을 바탕으로 새시대의 정의, 복지사회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전두환 대통령은 민족의 숙원인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하여 분단 사상 초유의 ""남북한 당국 최고 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의하여 남북 대화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는 용단을 내렸으며, ""한ㆍ미 정상회담""을 통하여 양국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한ㆍ미간의 새로운 동반자 시대를 열어 한국인의 긍지를 국내외에 과시하였다.
이제 온 겨레의 경축속에 위대하고 영광스런 ""제5공화국""이 출범하였다. 70년대의 짐을 청산하고 80년대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정의로운 민주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탁월한 영도력을 겨레와 인류 앞에 펼쳐갈 것이다.
체신부에서는 5천년 민족사의 새 기원을 열 제12대 대통령 취임과 제5공화국 출범에 즈음하여 온 겨레가 함께 경축하고 화합과 단결로 영도자의 높은 경륜과 지도 이념을 받들어 새 조국 건설을 위해 다 함께 참여하여 전진할 것을 다짐하는 뜻에서 이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naver
1988.2.25 (1987.12.16 당선) -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
노태우(盧泰愚, 1932~ ) 대통령이 1988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제13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함으로써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또 이날 전문과 본문 130조, 부칙 6조로 된 새 헌법이 발효됐다.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민주당의 김영삼, 평민당의 김대중, 공화당의 김종필 후보 등 이른바 `1노 3김`간의 대결 끝에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총유효투표의 36.6%에 해당하는 8백28만여 표를 획득, 차점자인 민주당 김영삼 후보를 약 1백90여 만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8년 2월 25일은 우리나라 제13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뜻깊은 날이다.
이날 취임하는 노태우 대통령은 여야의 합의에 따라 개정된 새 헌법에 의하여 지난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직접선거에서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체신부는 제13대 대통령 취임을 경축함과 동시에 민주발전과 화합의 새 장을 열게 될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우표를 발행한다." /조선
1993.2.25 - 김영삼 제14대 대통령 취임
"1993년 2월 25일은 제14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1992년 12월 18일의 대통령 선거에서 폭 넓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창조를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체신부에서는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을 경축하고 온 국민이 신한국 건설에 동참하기를 바라면서 이 우표를 발행합니다."
(우표발행안내) /k-stamp
1998.2.25 (1997.12.18 당선) - 김대중 제15대 대통령 취임
1998년 2월25일 오전 김대중 대통령은 국회의사당에서 임기 5년의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집무를 시작했다. 김 대통령은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 시대를 엽시다’란 제목의 취임사를 통해 “지금 이 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좌절과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새 정부를 ‘국민의 정부’로 명명하고 정치 개혁,개혁을 통한 경제난 극복,인간 존중의 정신혁명, 교육개혁, 냉전적 남북관계 청산 등을 다짐했다.
1998년 2월 25일은 50년만의 여ㆍ야간 정권교체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은 민주주의와 경제가 함께 발전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미래 지향적 국제 협력을 통해 21세기 한반도에 번영과 평화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이 이끄는「국민의 정부」가 화합과 도약을 향하여 힘차게 출범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0000022785
2003.2.25 -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취임
2003년 2월 25일은 제16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뜻깊은 날이다.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경축하고 국민대통합의 새로운 국가 건설에 온 국민의 동참을 바라면서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우표에는 세계 속의 한반도와 태극문양, 새로운 대통령의 모습이 변지의 백두산 천지와 어우러져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 건설, 한반도 평화와 국민통합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표현하고 있으며, 소형시트에는 해맑은 어린이들의 모습을 통해 미래 세대의 꿈과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외에도 우표와 소형시트, 초일봉투, 축하를 의미하는 나만의 우표 등이 담겨 있는 기념우표첩이 발행되고, 대통령의 캐릭터를 디자인한 기념통신일부인도 선보인다.
2003년 2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노무현(盧武鉉, 1946~ ) 대통령이 오른손을 든 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되는 선서를 했다. 이로써 제 16대 대통령이 탄생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이른바 운동권 가요로 불리던 `상록수`가 식장에 울려 퍼졌다.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가 기타를 직접 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방송광고로 만들어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지구를 상징하는 둥근 형태로 만들어진 중앙단상 옆 왼쪽과 오른쪽 측면 `귀빈석`은 과거와 달리 50여명의 국민대표의 차지가 됐다. 왼쪽 귀빈석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첸치천(錢其琛) 중국 부총리 등도 앉았고 노 대통령 내외가 앉은 중앙 단상에는 전직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등이 자리했다. 재계에서는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새정부는 개혁과 통합을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어나갈 것"이라면서 "이러한 목표로 가기 위해 저는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국정운영의 좌표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거듭 강조한 뒤 한· 미동맹에 근거한 점진적· 긍정적 발전관계 의사를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대북정책과 관련된 `한반도 평화·번영정책`의 원칙으로 `대화를 통한 해결` `상호신뢰 우선 및 호혜주의`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해 원활한 국제협력 구축` `대내외적 투명성 고양 및 국민참여 확대` `초당적 협력`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끝으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면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하고 원칙을 바로세워 신뢰사회를 만들자"고 말했다. /조선
2008.2.25 - 이명박 제17대 대통령 취임
2008년 2월 25일은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는 뜻 깊은 국민 축제의 날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는 국민을 섬기며, 경제 살리기와 국민화합을 바탕으로 세계 일류 선진국가로 도약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새 대통령의 취임을 맞아 국민 모두가 신나게 일할 수 있고,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도약하길 바라는 온 국민의 열망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우표에는 ‘글로벌 코리아’와 태극문양을 배경으로 미래 지향적 국가발전전략을 구상하는 ‘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담았으며, 소형시트에는 푸른색의 희망찬 색상과 시원한 와이드 비전을 배경으로 세계로 웅비하는 ‘강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표현하였습니다.
기념우표첩에는 소형시트와 전지 외에, 국민과 함께하는 따뜻하고 ‘친근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15가지 재미있는 캐릭터로 형상화한 나만의 우표와 국가의 미래에 대해 ‘고심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초일봉투가 함께 들어있습니다.
10년 만의 보수 정권인 이명박 새 정부가 25일 출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내외 귀빈과 일반 국민 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을 열고, 임기 5년의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부 수립 60년을 맞는 올해를 ‘대한민국 선진화 원년’으로 규정하면서,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자”고 주창했다.
‘경제 살리기’와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5대 국정 방향으로 △섬기는 정부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 △문화 창달과 과학 발전 △튼튼한 안보와 평화통일 기반 조성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인류공영 이바지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이 변화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다.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더 빨리 변해야 하며, 그 방향은 개방과 자율· 창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살리기와 관련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활기차게 성장하고,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각종 규제 개혁과 불필요한 정부 업무의 민간 이양, 공공부문 경쟁 도입, 세금 감면, 노사문화의 자율적 개선 등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남북 문제에선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 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북 정상이 언제든 만나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 기회는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대적 과제,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한 대전진이 시작됐다”며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우리 모두 함께 나가자”고 호소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가회동 자택을 떠나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국회의사당에 도착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취임식에는 전직 대통령과 3부 요인을 비롯해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탕자쉬안 중국 외무담당 국무위원, 빅토르 주프코프 러시아 총리 등 외국의 주요 경축사절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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