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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담

동지 팥죽의 유래 본문

새해,명절,성탄

동지 팥죽의 유래

복담이 2013. 12. 22. 10:06

 

동지 팥죽의 유래

 

동지 팥죽의 유래

 

 ::동지의 유래::

 

( 12월 22일)은 24절기 스물두번째 절기인 동지(冬至)랍니다. 동지는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데요, 하지만 선조들은 반대로 이날부터 낮이 길어져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날로 믿고 설 다음가는 ‘작은 설’로 여기는데 부터 시작되었지요!

 

 

::동지팥죽의 의미::

 

동지 때 팥죽을 끓여 나누어 먹고 집안 구석구석 뿌리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오랜 풍습이에요.
팥죽의 재료를 살펴보면 팥, 물, 쌀 새알심이 있는데요, 

 

팥은 : 붉은 색인 태양을 상징하고, 이는 곧 불을 의미합니다. 
쌀은 : 지상에서 나는 곡식중의 으뜸이며, 하늘의 모든 빛을 합한 흰색으로 하늘을 대표해요.

새알심은 : 흰색으로 하늘을 상징하며, 둥글게 빚어 원을 만든 것은 수많은 행성, 혹성, 위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12월 22일은

24절기 중의 하나로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 가장 길다는 동지입니다.
옛날에는 동지를 작은 설날이라고 하여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동지는 일년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동지 팥죽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신라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선비가 살았는데, 사람은 참으로 진실하였으나, 집안이 궁핍하였습니다.
어느 날 과객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고자 하여 쉬어가게 해주었더니,
다음날 새벽 길을 떠나기 앞서 그 과객은 선비에게 서로 친구가 되자고 하였습니다.

그 과객은 선비에게 종종 찾아와 벼를 심으라 하여 벼를 심었더니 벼 풍년이 들고,
고추를 심으라 하여 고추를 심으면 고추 농사가 풍년이 되는 등,

수년 간 많은 재산을 모으게 하여 그 선비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객은 늘 한밤중에 찾아와서는 날이 새기 전 닭이 울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주인인 선비는 재물은 남 부러울 것 없이 많이 모았으나,
세월이 갈수록 몸이 계속 야위어 가더니 마침내 몸이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색이 너무나 심하게 짙어지자,
그 선비는 어느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는데,
스님은 그 과객이 다시 찾아오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라 하였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그 과객은 백마의 피를 가장 싫어한다 하였습니다.

젊은 선비는 스님의 말씀을 새겨 들은 이후 점점 그 과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선비는 자기 집의 백마를 잡아 온 집안 구석구석 백마의 피를 뿌렸더니
그 동안 친절하던 과객이 도깨비로 변해 도망을 가면서 선비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선비는 다시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동지날이면 이 과객이 잊지 않고 찾아오는지라 젊은 선비가 스님께
해마다 백마를 잡아서 피를 바를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방도를 묻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팥물이 백마의 피와 빛깔이 같으니
백마의 피 대신 팥죽을 쑤어 그것을 집에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동짓날 팥죽을 끊이게 된 유래라 하기도 합니다.


 

 

 

 


 
 



동지의 유래는 신라시대의 설화에 의하면 어느 날 선비의 집에 과객이 찾아와 훈수를 두어 부자가 되었는데 항상 한 밤중에 왔다가 새벽에 닭이 울면 사라지곤 했다. 선비가 재산은 많아졌으나 몸이 아프고 야위어가기 시작해 근처의 스님에게 물어 보니까 그 과객은 도깨비니까 흰말을 잡아 그피를 뿌리면 없어 진다고 해서 해마다 말을 잡아 뿌릴 수 없어 팥죽을 쑤어 그 것을 집에 뿌려 도깨비를 물리쳤다고 하는데서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의 고서인 형초세기에는 공공씨의 말썽꾸러기 아들이 
동짓날 죽어 역질 귀신이 됐는데 생전에 붉은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짓날 팥죽을 먹고 역귀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일년 중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작은 설이라 불리는 동지,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합니다.

작은 설 이라는 동지에 팥죽을 먹는 이유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오늘이 지나면서 낮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오늘을 [작은 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정겨운 모습에 고향의 정이 그리워 지는 시간입니다. 팥죽 드시고.... 일년 내내.... 건강하세요 ~~ ^^*

 

 

 

윤덕노의 음식 이야기

고대의 새해인 동짓날에 먹는 신년음식

 
동짓날이면 팥죽을 먹는다. 귀신이 팥의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팥죽을 먹으면 나쁜 기운의 접근을 막아 액땜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문기둥에 팥죽을 뿌리기까지 했다.

지극히 미신적인 믿음인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하필 동짓날 팥죽을 먹는지, 또 귀신은 왜 팥의 붉은색을 싫어하는지 등등. 

아무리 옛날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도 터무니없게 들린다.

사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것은 우리만의 풍속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에도 동지 팥죽이 있다.

한중일 삼국의 고문헌은 모두 동지 팥죽의 기원을 6세기 초, 중국 양(梁)나라 때 종름이 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찾는다.

‘동짓날 해의 그림자를 재고 팥죽을 끓인다.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서다.’ 이유는 이렇게 적혀 있다. ‘

공공씨(共工氏)에게 재주 없는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역귀(疫鬼)가 됐다.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지에 팥죽을 끓여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공공씨는 고대 중국 신화에서 강을 다스리는 신이다.

황허 강이 범람하는 것도 공공씨가 심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 아들이 죽어서 역귀가 됐는데 역귀란 그냥 귀신이 아니라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이다.

그리고 역귀가 무서워한 것도 팥의 붉은색이 아니라 팥 그 자체다.

아마 팥의 영양분을 무서워했을 것이다.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강물이 범람해 수인성 전염병이 나돌았는데

뜨거운 팥죽을 먹고 예방을 했거나 치료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귀신을 물리치려고 팥죽을 먹는다는 풀이는 형초세시기에 나오는 주술적인 묘사만 강조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영조 임금이 ‘귀신을 쫓는다며

 문에다 팥죽을 뿌리는 공공씨의 이야기는 정도에 어긋나는 것이니 그만두라고 했음에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으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도 동지 팥죽의 유래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

왜 하필 동짓날에 그것도 팥죽을 먹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풀이가 있지만

동지 팥죽을 설날 먹는 떡국처럼 새해에 먹는 음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유력하다.

우리 속담에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새해 떡국을 한 그릇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는 말과 통한다.

예전에는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했다.

새해에 버금가는 날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지금의 음력을 달력으로 채택하기 전인 중국 주나라 때는

음력 11월이 한 해의 시작이었다.

동짓날이 새해 첫날이었던 것이다.

사마천도 ‘사기(史記)’에 동지는 태양이 되돌아와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풀이했으니 곧 새해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양기가 되살아나는 날이다.

이날 먹는 음식이 팥죽이었으니 ‘영조실록’에도 ‘동짓날 팥죽은 양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뒤집어 말해 팥죽은 고대의 새해인 동짓날에 먹는 신년 음식으로

새해의 공통소망인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원이 담겨 있다.

동지 팥죽을 먹고 나쁜 귀신을 쫓아 액땜을 한다는 의미

역시 새해에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