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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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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감상

[스크랩] "찔래꽃" 의 백 난아 선생 ( 꼭 읽어 보세요)

복담이 2010. 3. 30. 21:38

조선 블로그   :    http://blog.chosun.com/jin5465/4529319

 

본명 오 금숙으로 1923년 5월18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출생하시어 몇살에

서울로 내려왔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서울 양재 고등"을 졸업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백 난아 라는

예명을 갖기로는 선배가수 였던 백 년설씨께서 자신의 백씨 성에 흰꽃을 피우는 "蘭"을 좋아 한다

고 백 난아라고 지었다는 것에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치 않습니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노래로

민중의 울분을 달래줬던 "망향초 사랑" "낙랑 18세" "갈메기 쌍쌍" "아리랑 낙랑" 등 수많은 애창곡을

대중과 같이 불러 1세대 가요스타로 올라있습니다. 저는 2008년 8월21일 위의 이력으로 선생을 정리

모 사이트에 올렸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 3월 제주도에서 백선생과 친척이 되신다는 분

에 의하여 <백 난아 기념사업회>를 발촉하고 백 선생께서 다니셨다는 명월초등학교 앞에 찔래꽃 노

래비 공원을 만들고 2009년 7월 25~26일 2일간 가요제를 열었는데 한때 같은 무대에 섰던 "금 사향"

선생이 <게스터>로 출현했는데 백 난아 선생의 세째딸 이 출현하여 어머님의 찔래꽃을 불렀다 함은

백 난아 선생의 출생지가 함북 청진이 아니고 제주도의 명월리 라는 곳에서 나셨던 것이 사실이 아닐

지 또한 서울에 오빠 되시는 분이 생존중이라는 사실과 백 선생은 3남3녀 중 세째 였다고 합니다.

 

저는 백 선생을 흠집을 내거나 제가 소개했던 내용이 완벽한 사실이라고 고집하지 않습니다. 작고하신

작곡가(빨간 마후라)이자 음악 평론가 셨던 고 황 문평선생께서 누구도 하지못한 가요 반세기를 시대별

로 책자와 음반으로 완벽에 가깝도록 정리 하셨습니다. 제가 백 난아 선생을 소개한 내용이 당시의 조사

되었던 그 내용을 적어 올렸던 것입니다. 본인은 사실 원로가수분들을 대부분 잘 알고 지냅니다.이 문제

가 한때 대단한 논란꺼리 였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가요사는 개인적인 프로필이 정확하게 기록될때 그

가치가 신뢰성과 함께 길이 남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렇게 정리 하고 싶습니다. 제주도에 친인척이 많다는

것과 서울의 친오빠가 생존하고 있었다면 백 난아 선생의 출생지는 제주도가 맞는것이 아닐까?생각하고

그러면 그동안 알려졌어야 할 이 사실이 어째서 오늘에 와서 불거졌느냐? 사실 백 년설씨는 백 난아선생

을 자신의 딸이라고 모르는 이에게 소개 했답니다. 즉 이복형제들이 아닐지? 같은 아버지 지만 어머님이

다를 경우 집안 분위기에 따라 피차 요원한 사이로 남보다 못하게 지내는 경우가 있듯이 유사한 경우로

해석 하고 싶습니다. 이 백 난아 선생 또래 남,녀가수들의 경우 "이 난영""장 세정" "박 달마" 등 30여분들

의 노래를 작사했거나 작곡한 분이 6,25로 월북했거나 인민군으로 끌려간 사람들 까지 그 분들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연 불행했던 그 분들이 매일 모여 소일한곳이 충무로의 신 카나리아 씨가 문

을 열었던 "카나리아 다방"이 였습니다. 원로가수 대부분 수십년 그 다방을 이용 했습니다. 살길을 찾아

 L A로 이민을 가서 한인방송에 출현하는 정도 였습니다. 자살하신분이 몇분 있고, 백 선생 역시 심장병

을 앓다 1989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1992년에 생을 마감 하셨습니다.

 

 

 

 

 

 

V.A. - 찔레꽃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백 선생의 목소리 입니다.

 

 

출처 : 가정은 사랑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글쓴이 : 이 세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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