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생각나는
대표적인 인물
유관순(柳寬順),
1902년음력 11월 17일/12월 16일~ 1920년9월 28일)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일제 강점기에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제국의 모진 고문으로 18세 때 순국하였다.
1962년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1996년이화여자고등학교는
명예 졸업장을 추서하였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의
생가가 복원되어
1991년사적제230호로 지정되었다.
손병희(孫秉熙,)
1861년4월 8일~ 1922년5월 19일)
천도교(동학) 지도자이자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밀양이다.
본래 이름은 손응구(孫應九)이며,
망명 중 사용한 가명은 이상헌(李祥憲),
최시형에게 받은 도호(道號)는 의암(義菴)이다
1919년민족대표 33인중
한 명으로 3·1 운동을 주도했다.
기미독립선언서낭독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병보석으로 출옥한 후 1922년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별세하였다.
김구(金九),
1876년8월 29일(음력 7월 11일) ~ 1949년6월 26일)
◈ 1894년 . 19세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교육자·정치인이다.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였고,
교육·계몽운동 중 일본경찰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1919년이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 의원,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총리 대리,
노동국 총판등을 지냈다.
1921년이후 사회주의에 입각한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결별하고,
만주 사변이후에 일본의 중국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중국내 여러 지역으로 임시 정부를 옮겨다니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1926년12월부터 1927년까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국무령을,
이후 국무위원을 거쳐 1940년3월부터 1948년8월 15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국무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1945년광복이후에는 신탁 통치반대 운동과
임시정부법통 운동을 하였으며,
1948년1월부터 남북 협상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