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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담

음악의 아버지 바흐 본문

힐링,치유

음악의 아버지 바흐

복담이 2011. 1. 30. 20:08
음악의 아버지 바흐|

 

 



                                                          

그림: 김  판국 화백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서양 음악사상 가장 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바흐 가문은,

1685년에 태어난 요한 바스티안 바흐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고 있다.

 

바흐의 가계(家系)는 멀리 16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그들의 집안은 대대로 중부 독일의 튀링겐(Turingen)을 중심으로 하여

활동을 해 온 전형적인 프로테스탄트 가문이었다.

 

마틴 루터(Martin Ruter, 1483~1546)가 바흐 집안의 활동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아이젠나하에서 그 신앙적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바흐의 인생과 음악을 움직이게 해 준 대부분의 사람들이

루터파(派)의 신앙생활에 충실했었다는 것이 첫째 이유가 될 것이다.

 

바흐의 아버지는 요한 암브로시우스(Johann Ambrosius Bach)이며,

그에게는 요한 크리스토프(Johann Christoph Bach)라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그들 쌍둥이 형제의 맏형이 게오르그 크리스토프(Georg Christoph Bach)인데,

이 3형제를 낳아준 요한 크리스토프와 그의 아버지인 요하네스 등은

모두가 유명한 악사(樂士)들로서 훗날 J.S바흐가 태어날 수 있는

혈통적 유전질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흐 역시 20명에 달하는 많은 자녀를 두었다.

그 중에서도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Wilhelm Friedeman, 1710~1784)과

차남인 칼 필립 에마누엘(Karl Phillip Emanuel Bach, 1714~1788),

막내 아들인 요한 크리스티안(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 등은

모두가 뛰어난 음악가로서 바흐의 가문을 빛나게 해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전유럽에서 뛰어난 음악활동을 펼침으로써

바흐와 헨델을 정점으로 하는 바로크음악과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빈 고전악파의

징검다리 구실을 해주었다는 점에서도

그들이 차지한 음악사적인 위치가 크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야말로

200년간에 걸친 바흐 가문의 음악을 총결산 하면서

세계 음악사상 가장 높은 봉우리로 우뚝 솟은 거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음악의 물줄기는 바흐로부터 흘러 나와서

다시 바흐로 되돌아갈 만큼,

그의 이름이 차지하는 음악사적 비중은 너무나 크고 당당하다.

 

그래서 바흐를 가리켜 '음악의 아버지'라고 스스럼 없이 일컬어지고 있으며,

그 이름에 합당할 만큼 바흐의 음악은

인류의 위대한 음악 문화적 유산으로 길이 흠모되고 있는 것이다.

바흐의 이름자인 Bach는 독일어로 '작은 시냇물'이란 뜻이다.

그러나 악성 베토벤은 바흐를 가리켜

"당신은 작은 시냇물이 아니라 드넓은 대양(大洋)입니다"라고 멋진 비유를 했다.

 

사실 바흐의 이름으로 작곡되어진 모든 음악들이야 말로

어떤 대해(大海)보다도 드넓으며, 어떤 계곡 보다도 깊고 오묘하다.

평생동안을 프로테스탄트적 신앙생활을 지켜 가면서 써낸

수많은 종교음악을 비롯해서 기악곡과 관현악곡에 이르는

모든 부문에 이르기까지 바흐는 엄청난 대작업을 이루어낸 것이다.

 

헨델(G.F.Handel)과 함께 바로크시대를 총결산 했던

바흐는 1749년 봄 뇌졸증 발작과 함께 시력이 눈에 띠게 줄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흐는 당시 유명한 안과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았다.

회복을 위한 오랜 시간이 흘러 의사가 바흐의 눈에서 붕대를 풀었을 때

침대에 둘러서 있던 자녀들이 바흐에게 물었다.


"아버님, 뭔가 보이세요?"

 

바흐가 대답다.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영원히 볼 수가 없다는 사실에 그의 가족은 큰 슬픔에 잠겼다.

그때 바흐는 오히려 자녀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불렀다.

 

그가 작곡한 찬송가 145장 3절이었다.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 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없이 고마워/ 보잘 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 주님만 사랑하며 나 살게 하소서”

 

결국 1750년 7월 28일 밤 8시 45분 경 바흐는 위대한 65세의 일생을 마쳤다.

그의 곁에서 사랑하는 부인 안나 막달레나가 임종을 지켜 봤다.

바흐가 죽고 난 뒤 그의 가족들은 이리 저리 흩어졌으며

수많은 악보도 분실되거나 손상돼 버린 채

그의 이름은 점점 세상 사람들의 귀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을 비롯한

후세 사람들의 끈질긴 노고에 힘입어 바흐는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고,

모든 곡들이 연주회장의 레파토리에 등장하게 됐다.

 

오늘날 바흐의 음악작품들이 인류의 가장 귀중한 보물로 대접 받고 있는 이유도

그가 써낸 음악들이 인류의 정신사적 흐름을 가장 농밀하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항상 신앙적 구도의 길을 버리지 안았던 생활관과 음악관이

많은 사람을 공감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흐야말로 인류가 갖는 가장 고귀한 음악가였다고 해도 좋을 그런 사람이었다(뉴라이프)